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안녕하세요. 한 주의 가운데 수요일 저녁입니다.
월요일과 화요일 이틀을 달려오시느라 마음이 많이 무거우셨을 줄 압니다. 직장에서, 가정에서, 아이 때문에, 부모님 때문에, 통장 잔고를 보면서, 잠 못 이루는 새벽에 천장을 바라보면서 — 말로 다 못 할 답답함을 안고 이 자리에 오셨을 수 있습니다.
오늘은 그 답답함을 가장 먼저 이해해 주시는 한 여인을 만나 보려고 합니다. 사무엘상 1장 9절부터 18절, "마음이 괴로워서 통곡하며"라고 표현된 한나의 이야기입니다.
사무엘상은 사사 시대의 끝자락, 이스라엘이 영적으로 가장 혼란하던 시대를 배경으로 합니다. 제사장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타락해 있었고, 백성들은 길을 잃었습니다.
그런데 이 어두운 시대에 한 평범한 여인의 기도에서 새로운 역사가 열립니다.
한나는 아이를 가질 수 없는 여인이었고, 같은 남편의 다른 아내 브닌나로부터 매년 격분하게 함을 받았습니다. 매년 실로에 올라갈 때마다 그녀의 상처는 더 깊어졌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 한나가 마침내 하나님 앞에서 모든 것을 쏟아내는 장면입니다.
한나는 일어났습니다. 식탁에서 일어났습니다. 가족들이 함께 먹고 마시는 자리, 겉으로는 즐거워 보이는 자리에서 그녀는 일어났습니다.
왜냐하면 그 자리에 앉아 있어도 마음이 채워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오늘 30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풍경입니다. 회식 자리에서 웃고 있지만 마음은 천 갈래로 찢어집니다. 아이를 재우고 거실에 앉으면 갑자기 눈물이 차오릅니다. SNS에서 동기들이 승진했다는 소식, 친구 아이는 영재라는 자랑글을 보고 나면 내 자리는 한없이 초라해집니다. 부부가 한 침대에 누워 있어도 등을 돌리고 있고, 부모님 전화를 받으면 한숨부터 나옵니다. 누구에게도 다 말할 수 없는 무게가 있습니다.
한나는 그 무게를 어디로 가져갔습니까? 술집으로 가지 않았습니다. 친정 어머니에게 달려가지 않았습니다. 남편 엘가나에게 따지지도 않았습니다. 그녀는 여호와의 전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통곡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통곡"이라는 단어가 얼마나 무겁습니까. 점잖은 기도가 아닙니다. 정돈된 문장이 아닙니다. 어깨를 들썩이며 오는 울음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너무 정돈된 기도만 드리려고 합니다. 좋은 단어를 골라서, 점잖은 표현으로, 마치 면접을 보듯이 기도합니다. 그러나 시편은 말씀합니다.
"마음을 토하라"고 하십니다. 정돈하지 말고 그대로 부으라고 하십니다.
우리의 눈물 한 방울 한 방울을 병에 담으시는 분이 우리 하나님 아버지이십니다.
한나가 여호와 앞에 오래 기도하는 동안, 엘리가 그의 입을 주목합니다. 한나가 속으로 말하며 입술만 움직이고 음성은 들리지 않으므로, 엘리는 그녀가 술 취한 줄로 생각합니다.
제사장이 한나에게 말합니다. "네가 언제까지 취하여 있겠느냐 포도주를 끊으라."
가장 깊은 기도의 자리에서 받은 가장 깊은 오해입니다. 사람들은 우리 마음을 다 알지 못합니다. 가장 가까운 사람도, 심지어 영적 지도자도 우리의 마음을 오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나는 변명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조용히 말합니다. "나는 마음이 슬픈 여자라 포도주나 독주를 마신 것이 아니요 여호와 앞에 내 심정을 통한 것뿐이오니."
성도 여러분, 우리가 기도의 자리에 있을 때 사람들의 시선과 오해를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우리의 진심을 아십니다. 사람의 평가가 아니라 하나님의 응답이 우리를 살립니다.
엘리가 마침내 그녀의 진심을 알아보고 축복합니다. "평안히 가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너의 기도하여 구한 것을 허락하시기를 원하노라." 한나가 대답합니다. "당신의 여종이 당신께 은혜 입기를 원하나이다." 그리고 본문은 이렇게 마무리됩니다.
성도 여러분, 자세히 보십시오. 한나가 집으로 돌아간 그때가 언제입니까? 사무엘이 태어난 후가 아닙니다. 임신 사실을 확인한 후도 아닙니다. 응답이 오기 전입니다.
아직 아무것도 보이지 않은 그 시점에 한나의 얼굴에서 근심빛이 사라졌습니다. 이것이 기도의 신비입니다. 응답을 받기 전에 이미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무엇이 변했습니까? 상황은 그대로입니다. 여전히 아이는 없습니다. 여전히 브닌나는 그녀를 격분시킬 것입니다. 여전히 다음 달에 또 실로에 올라가야 합니다. 그런데 한나의 얼굴이 변했습니다.
응답이 오기 전에 평강이 먼저 옵니다. 상황이 바뀌기 전에 마음이 먼저 바뀝니다.
우리는 응답을 기다리느라 지쳐 있습니다. 직장의 응답, 부부 관계의 응답, 아이의 변화, 부모님의 회복, 통장의 회복 — 응답이 오지 않으면 평안도 없다고 우리는 생각합니다.
그러나 한나는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응답 전에도 평안할 수 있다는 것을. 상황이 그대로여도 얼굴이 바뀔 수 있다는 것을.
어떻게 가능합니까? 하나님께 진실로 모든 것을 쏟아냈기 때문입니다. 마음의 짐을 그분께 정말로 맡겼기 때문입니다.
맡기는 것입니다. 들고 다니는 것이 아니라 맡기는 것입니다. 우리는 너무 자주 기도하고 나서도 그 짐을 다시 들고 나옵니다. 한나는 진짜로 두고 왔습니다. 그래서 얼굴이 바뀌었습니다.
사랑하는 30대 성도 여러분, 이번 한 주 두 가지를 실천해 보시기를 권면드립니다.
매일 밤 10분 — 하나님 앞에서 "통곡 기도"의 자리
정돈된 기도가 아니어도 됩니다. "하나님, 오늘 회의에서 정말 견디기 힘들었습니다." "하나님, 아이가 또 떼를 쓰는데 제가 폭발할 것 같았습니다." "하나님, 통장을 보면 한숨밖에 안 나옵니다." 그대로 토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정돈된 기도가 아니라 진실한 마음을 받으십니다.
응답을 기다리며 평안을 잃지 마십시오
이번 주 아직 풀리지 않은 한 가지 문제를 정해서, 그것을 매일 한 번씩 "하나님께 맡깁니다"라고 말로 선포해 보십시오. 응답이 오기 전에 평강이 먼저 오는 그 신비를 체험하시기 바랍니다.
응답 전에 얼굴이 먼저 바뀝니다 · 평안히 가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