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믿음 성도 여러분, 주일 아침 예배를 시작하겠습니다.
혹시 요즘 이런 느낌을 받으신 적 있으신가요? 열심히 살고 있는데,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는 느낌. 직장에서 억울한 일을 당해도 참아야 했던 날, 가정을 위해 묵묵히 희생했는데 그게 너무 당연하게 여겨졌던 날, 최선을 다했는데 돌아오는 건 실망뿐이었던 날.
30대를 살아가는 많은 분들이 이런 감정 속에서 하루하루를 버티고 계십니다. 억울함, 외로움, 그리고 어딘지 모르게 내 삶이 낭비되고 있다는 공허함. 그런데 오늘 우리가 함께 펼칠 본문은, 바로 그 감정의 한복판으로 걸어 들어오시는 한 분의 이야기입니다.
이사야 53장. 이 본문은 지금으로부터 약 2700년 전에 기록된 예언서인데, 놀랍게도 그 어떤 복음서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 우리는 왜 예수님이 고난을 받으셨는지, 그리고 그 고난이 나의 삶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함께 발견하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사야는 남유다 왕국에서 활동한 선지자였습니다. 그가 살던 시대는 기원전 8세기, 아시리아와 바벨론이라는 거대한 제국들이 이스라엘을 위협하던 시대였습니다. 백성들은 두려웠고, 국가는 흔들리고 있었으며, 포로 생활의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 절망의 땅에서 이사야는 놀라운 메시지를 선포합니다. 하나님께서 한 종을 보내실 것이며, 그 종이 백성들의 모든 고통과 죄악을 대신 짊어지실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 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이사야가 이 예언을 기록한 지 정확히 700여 년이 흐른 뒤, 갈릴리 나사렛 출신의 한 청년이 예루살렘에서 십자가에 달렸습니다.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이사야가 보았던 그 종의 모습이 예수님의 생애와 단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맞아 들어갔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이 짧은 두 문장 안에 복음의 전부가 담겨 있습니다.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 이 구절은 한 번도 아니고 두 번 반복해서 강조합니다. 그 종이 고난받은 이유가 그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건 나 때문이었고, 우리 때문이었습니다.
신학적으로 이것을 대속이라고 부릅니다. 누군가가 다른 사람 대신 그 값을 치르는 것. 그런데 오늘 이 개념을 신학 용어로만 설명하고 싶지 않습니다.
어떤 아버지가 있었습니다. 그의 아들이 사회 초년생 시절 심각한 실수를 저질러 갚기 어려운 큰 빚을 지게 되었습니다. 법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혼자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때 아버지가 조용히 나섰습니다. 수십 년을 모아온 퇴직금을 전부 털어 아들의 빚을 한 번에 갚아 버렸습니다. 아들은 아버지가 그 돈을 모으기 위해 얼마나 허리를 졸라매며 살아왔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아무 말도 못 하고 무릎을 꿇은 채 울었습니다.
잠시 후 아버지가 말했습니다. "갚지 않아도 된다. 그냥 살아라."
성도 여러분, 이게 바로 이사야 53장이 우리에게 전하는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도저히 갚을 수 없는 죄의 빚을 대신 갚으셨습니다. 찔리고 상하는 방식으로, 십자가 위에서 온몸으로 치르셨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예수님의 고통이 우리의 평화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상처가 우리의 치유가 되었습니다.
30대를 살아가는 성도 여러분, 지금 마음속에 무거운 죄책감이 있으신가요? 아무에게도 말 못 한 수치심이 있으신가요? 관계 속에서 쌓인 상처와 실수들이 아직도 마음 한 켠을 짓누르고 있으신가요? 그 모든 것을 예수님은 이미 담당하셨습니다. 여러분이 더 잘해야, 더 착해야, 더 열심히 해야 그 빚을 갚을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예수님이 이미 다 치르셨습니다.
도대체 왜 하나님은 이 구원의 계획을 이토록 고통스러운 방식으로 이루셨을까요? 왜 전능하신 하나님이 당신의 종을 이렇게 처참하게 내어 주셔야 했을까요?
"여호와께서 그에게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하게 하셨은즉."
하나님이 원하셔서, 하나님이 뜻하셔서 당신의 종이 상함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이건 실수가 아닙니다. 우연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의지였습니다.
왜 하나님은 이 길을 선택하셨을까요? 그건 죄가 그만큼 무겁기 때문입니다. 죄는 그냥 눈 감아 주고 넘어갈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죄는 반드시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그런데 그 대가를 우리가 치르면 우리가 멸망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다른 길을 여셨습니다. 대신 치르는 길, 대속의 길을 여신 겁니다.
어느 판사의 법정에 피고인이 들어왔는데, 그 피고인이 다름 아닌 자신의 아들이었습니다. 아들은 실제로 죄를 저질렀고, 법은 분명했습니다. 판사는 자리에서 일어나 판결을 내렸습니다. 유죄, 벌금 500만 원.
법정이 조용해졌습니다. 그런데 그다음 순간, 그 판사는 법복을 벗고 판사석에서 내려와 자기 지갑을 꺼냈습니다. 그리고 아들 대신 그 벌금 전부를 냈습니다.
이게 십자가입니다. 하나님은 죄를 그냥 눈 감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그 죗값을 우리 대신 예수님이 치르게 하셨습니다.
"그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하게 여길 것이라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또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로다."
십자가는 실패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 고난의 열매를 보시고 만족하셨습니다. 우리가 의롭게 되는 것,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설 수 있게 되는 것, 바로 그게 그 고난의 열매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기꺼이 그 길을 걸으셨고, 그 결과를 기뻐하셨습니다. 우리는 그분의 기쁨입니다.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받았느니라."
십자가는 과거의 사건이지만, 우리의 오늘을 바꾸는 능력입니다. 30대는 끊임없이 뭔가를 증명해야 하는 시기입니다. 직장에서도, 가정에서도, 관계에서도 해내야 한다는 압박이 있습니다. 그 압박이 신앙 안에까지 스며듭니다. '더 잘 믿어야 해, 더 기도해야 해, 더 봉사해야 해, 그래야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실 거야.'
그런데 이건 복음이 아닙니다. 복음은 정반대입니다. 우리가 잘해야 사랑받는 게 아니라, 이미 사랑받았기 때문에 살아가는 겁니다.
직장에서 큰 실수를 하고 나서 며칠 동안 교회에 나오지 못하신 분이 계셨습니다. 하나님 앞에 너무 부끄러워서, 기도할 자격이 없는 것 같아서 성경도 펼치지 못하셨다고 했습니다.
그 마음, 이해되시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사야 53장은 뭐라고 말합니까? 예수님이 이미 그 수치를 담당하셨습니다. 우리가 실패했을 때 하나님에게서 멀어질 이유가 없습니다. 오히려 그때 더 달려가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미 그 자리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죄책감은 우리를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만드는 도구가 되어선 안 됩니다. 죄책감은 오히려 우리를 십자가 앞으로 이끄는 나침반이 되어야 합니다. 내가 얼마나 부족한지를 알 때, 예수님이 나를 위해 얼마나 크게 치르셨는지를 더 깊이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그 깨달음이 감사가 되고, 그 감사가 삶을 바꿉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우리가 아무것도 갖추지 못했을 때, 그때 이미 하나님은 우리를 향한 사랑을 증명하셨습니다. 이게 이사야 53장이 우리에게 전하는 가장 깊은 진실입니다. 고난받는 종의 이야기는 결국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 이야기입니다.
오늘 이 말씀 앞에서 한 가지 결단을 드리시기 바랍니다. 이번 주, 마음속에 오랫동안 짓누르고 있던 죄책감과 수치심을 하나님께 내어 드리십시오. 기도 중에, 혹은 조용한 묵상 중에 이렇게 고백하십시오. "주님, 예수님이 이미 이것도 다 담당하셨음을 믿습니다."
그리고 그 고백 위에서 일어나 걸어가십시오. 더 이상 스스로를 정죄하는 데 에너지를 쏟지 마시고, 예수님이 이미 갚으신 그 은혜 위에서 담대히 살아가십시오. 그게 바로 십자가 앞에서 드리는 진정한 예배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이사야 53장의 말씀을 통해 다시 한번 십자가 앞에 서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우리의 허물 때문에 찔리시고, 우리의 죄악 때문에 상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오늘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성도들이 새롭게 받게 하여 주옵소서.
오랫동안 마음속에 쌓아 두었던 죄책감과 수치심을 이 시간 주님 앞에 내려놓게 하시고, 예수님이 이미 다 치르셨다는 믿음 위에 굳게 서게 하여 주옵소서.
이번 한 주 그 은혜를 붙들고 담대하게 살아가게 하시고, 연약한 이웃에게도 이 십자가의 사랑을 흘려 보낼 수 있는 성도들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