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믿음교회 수요 저녁 예배를 시작하겠습니다.
혹시 이런 생각, 해보신 적 있으신가요? 친구는 벌써 집을 샀는데 나는 아직 전세고, 동갑 동료는 팀장이 됐는데 나는 제자리인 것 같고, 결혼을 했으면 아이 문제로, 아직 싱글이면 결혼 시기 문제로. 어디를 봐도 "때를 놓친 것 같다"는 불안이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는 느낌 말입니다.
서른이 되면 다 정돈될 줄 알았는데, 막상 서른을 넘어서 보니 오히려 질문이 더 많아지는 나이가 이 시기인 것 같습니다. 내 인생의 타이밍이 맞는 건지, 하나님은 지금 어디 계신 건지. 오늘 우리가 함께 살펴볼 말씀은 전도서 3장입니다.
전도서는 성경 안에서도 독특한 책입니다. "헛되고 헛되도다, 모든 것이 헛되도다"로 시작하는 이 책은, 인생의 모든 수고와 노력이 결국 바람을 잡으려는 것과 같다고 반복해서 말합니다. 히브리어로 '코헬렛', 전통적으로 솔로몬 왕으로 여겨지는 이 인물이 인생의 끝자락에서 뒤를 돌아보며 던지는 성찰이 바로 전도서입니다.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 …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춤출 때가 있으며"
열네 쌍의 대조. 태어남과 죽음, 심음과 뽑음, 웃음과 울음, 전쟁과 평화. 삶의 모든 국면이 짝을 이루며 나열됩니다. 그리고 11절에서 결론을 이렇게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
여기서 사용되는 히브리어 단어 '에트'는 그냥 흘러가는 시간이 아니라 특별한 의미가 담긴 결정적 시점을 가리킵니다. 하나님께서 주관하시는, 목적이 있는 시간입니다. 전도자가 열네 쌍의 반대되는 상황을 나열하는 이유는 우리를 허무주의로 이끌기 위함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렇게 말하고 싶은 겁니다. "삶에는 당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시절이 반드시 옵니다. 그러나 그 시절조차 하나님의 손 안에 있습니다."
30대를 살아가는 성도님들이 느끼시는 타이밍에 대한 불안은 신앙의 문제와 직결됩니다. 우리는 무의식 중에 내 인생의 시계를 내가 쥐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 기준이 어디서 왔는지 돌아보면, 대부분은 SNS고, 주변의 시선이고, 세상이 만들어 놓은 표준입니다. 전도자는 바로 그 지점에서 우리를 멈춰 세웁니다.
농부가 씨앗을 심는 계절을 생각해보십시오. 씨앗을 심어 놓고 일주일이 지나도 싹이 보이지 않으면, 농부는 불안해하며 씨앗을 다시 파내지 않습니다. 흙 속에서 무언가가 일어나고 있다는 걸 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도 그분의 방식으로 일하고 계십니다. 성도님의 삶 안에서, 지금 이 순간에도,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싹을 틔우는 일이 일어나고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꾸 흙을 파헤치려 합니다. "왜 아직이냐"고, "왜 내 타이밍은 이렇게 늦느냐"고. 그 조급함이 오히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방해하기도 합니다.
전도서 3장이 우리에게 말하고자 하는 바는 운명론이 아닙니다. 삶의 모든 계절, 기쁨의 때와 슬픔의 때, 세워지는 때와 허물어지는 때, 그 모든 시간이 의미 없이 흘러가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손 안에서 목적을 가지고 움직이고 있다는 선언입니다. 우리가 물어야 할 질문은 "왜 내 때는 늦느냐"가 아니라, "이 때에 하나님은 나에게 무엇을 말씀하시는가"로 바뀌어야 합니다.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때가 차매.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오신 건 우연히, 갑자기가 아니었습니다. 수천 년의 역사, 수많은 예언, 수없이 많은 계절들이 쌓이고 쌓인 끝에, 하나님이 정하신 바로 그 때에 그리스도가 오셨습니다.
십자가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보기에 십자가는 가장 어두운 때였습니다. 죽음의 때, 버려짐의 때, 절망의 때처럼 보였습니다. 제자들도 그렇게 느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바로 그 가장 어두운 때를 가장 영광스러운 때로 바꾸셨습니다. 무덤에서 사흘이 지나고, 부활이 일어났습니다.
지금 여러분의 삶에서 가장 어둡고 가장 조용한 그 계절에도, 하나님은 부활의 씨앗을 심고 계실 수 있습니다.
한 청년이 오랫동안 원하던 일을 향해 달려왔습니다. 준비했고, 기다렸고,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기회는 오지 않았습니다. 그가 기도 중에 하나님께 이렇게 물었다고 합니다. "하나님, 저는 준비가 됐습니다. 왜 아직 문을 열어주지 않으십니까."
그때 그의 마음속에 조용한 음성이 들렸습니다. "나는 문만 준비시키는 게 아니라, 네가 그 문을 통과할 그릇이 되도록 준비시키고 있다." 하나님은 결과만이 아니라 그 결과를 담을 사람을 만들어가고 계셨던 겁니다.
"어떠한 형편에 있든지 자족하기를 배웠노라"
이건 체념이 아닙니다. 바울은 이것을 배웠다고 했습니다. 배움에는 시간이 걸립니다. 어떤 계절을 통과하면서, 어떤 기다림을 지나면서, 어떤 넘어짐을 경험하면서 배웠다는 겁니다. 자족함은 타고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때를 신뢰하는 훈련을 통해 길러지는 겁니다.
성도님, 지금 여러분이 서 있는 그 계절을 한번 바라보십시오. 아직 싹이 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그 계절, 늦은 것처럼 느껴지는 그 자리. 하나님은 그 자리에서 도망치라고 하시지 않습니다. 그 자리에서 그분을 만나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계절도, 내가 원하지 않았던 기다림도, 하나님의 손 안에서는 합력하여 선을 이룹니다. 오늘 이 한 가지를 결단하십시오.
"나는 오늘부터, 내 타이밍을 요구하는 기도 대신, 이 때에 주님이 무엇을 원하시는지를 묻는 기도를 드리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 말씀 앞에 서서 고백합니다. 우리는 자주 내 때를 앞세우며 살았습니다. 조급함으로, 비교함으로, 하나님의 때를 재촉했습니다.
그 죄를 용서해 주시고, 다시 아버지의 손을 붙잡게 해 주십시오.
지금 각자의 삶에서 기다리고 있는 모든 계절 안에서, 하나님이 일하고 계심을 믿는 믿음을 허락해 주십시오.
지쳐 있는 지체들에게는 회복을, 흔들리는 지체들에게는 견고함을, 포기하려는 지체들에게는 다시 한번 일어설 은혜를 부어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