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바른믿음교회 성도 여러분, 한 주간의 절반을 지나 수요일 저녁, 이렇게 하나님 앞에 나와 예배드릴 수 있어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월요일, 화요일을 버텨내고 오늘 이 자리까지 걸어오신 여러분,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저마다 다른 무게를 짊어지고, 다른 자리에서 씨름하다가 이 예배 자리로 나오셨을 겁니다. 그럼에도 이 자리에 나오셨다는 것, 그 자체가 이미 믿음의 고백입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나눌 말씀은 전도서 3장입니다. 모든 것에는 때가 있다는 이 말씀이 오늘 저녁 여러분의 마음에 깊이 닿기를 소망합니다.
혹시 이런 감정을 느껴보신 적 있으십니까? 분명히 열심히 살고 있는데, 왜 내 인생은 아직 제자리인 것 같을까. 친구는 취업이 됐고, 다른 친구는 연애도 잘 되고, 어떤 친구는 벌써 결혼까지 했는데 나는 왜 이렇게 느린 걸까. 이 조급하고 불안한 마음, 20대라면 누구나 한 번쯤 통과하는 감정일 겁니다.
우리는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타이밍에 대한 압박을 받습니다. 몇 살에는 무엇을 해야 한다, 이때까지 이것을 이루지 못하면 뒤처진다는 사회의 시선 앞에서 많은 청년들이 자신의 때를 잃어버린 것 같다고 느낍니다. 그런데 오늘 하나님의 말씀은 그 불안한 마음에 아주 근본적인 질문 하나를 던집니다. 과연 때를 정하는 분이 누구인가.
"천하에 범사가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룰 때가 있나니"
세상의 모든 일에는 하나님이 정하신 때가 있다는 것, 그리고 그 때는 우리가 임의로 앞당기거나 늦출 수 없다는 것을 솔로몬은 선언합니다. 날 때와 죽을 때, 심을 때와 뽑을 때, 사랑할 때와 미워할 때, 전쟁할 때와 평화할 때. 총 열네 쌍, 스물여덟 개의 때가 나열됩니다. 삶의 그 어떤 상황도 하나님의 손 밖에 있지 않습니다.
이 말씀이 우리에게 가장 강력하게 다가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읽을 때입니다. 예수님의 탄생도, 사역도, 십자가도, 부활도 모두 하나님이 정하신 정확한 때에 이루어진 사건들이었습니다.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요한복음 11장에 보면, 나사로가 죽었을 때 예수님께서 이틀을 더 머물다가 베다니로 오셨다는 장면이 나옵니다. 마르다는 예수님을 만나자마자 이렇게 말합니다.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왜 더 일찍 오시지 않았을까. 왜 우리가 가장 필요할 때 하나님은 침묵하시는 것처럼 느껴질까. 그런데 예수님은 바로 그 자리에서 나사로를 살리십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때는, 우리가 기대했던 때가 아니라 하나님이 정하신 때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전도서 3장의 핵심입니다.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다는 이 진리는, 단순한 위로의 말이 아닙니다. 역사 안에서 실제로 자신의 아들을 보내셔서, 가장 완전한 때에 구원을 이루신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가리키는 선언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내가 기다리고 있는 이 시간, 아직 응답받지 못한 것 같은 이 계절이 과연 무의미한 공백일까요? 아닙니다. 결코 무의미한 공백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기다림의 시간이야말로 하나님이 가장 깊이 일하고 계시는 순간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 무려 삼십 년을 나사렛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보내셨습니다. 목수의 아들로, 조용히,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그 자리에서요. 겉으로 보기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였지만, 하나님 앞에서 그 시간은 가장 풍성한 준비의 시간이었습니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여기서 앙망한다는 말이 히브리어로 '카바'인데, 그 의미가 단순히 바라본다는 뜻이 아닙니다. 마치 밧줄을 꼬아 엮듯이, 기다리는 동안 오히려 더 단단해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을 기다리는 시간은 우리를 무너뜨리는 시간이 아니라, 우리를 더 깊고 강하게 빚어가는 시간입니다.
취업이 되지 않아서 2년을 기다린 청년이 있었습니다. 그 시간이 너무 길게 느껴져서 하나님이 나를 버리신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청년이 나중에 고백하기를, 그 2년의 시간 동안 자신이 왜 일하려 하는지,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지를 하나님 앞에서 진지하게 물어보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기다림이 방향을 잃은 삶을 다시 하나님께로 향하게 했던 겁니다.
나무가 겨울에 성장을 멈춘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 뿌리가 가장 깊이 내려가는 계절이 바로 겨울이라고요. 지금 경험하고 있는 멈춤의 계절이, 사실은 가장 깊이 뿌리내리고 있는 시간일 수 있습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SNS를 열면 누군가는 벌써 취업했고, 누군가는 결혼했고, 누군가는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그 화면을 보면서 나는 왜 이러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스쳐가는 밤이 분명 있을 겁니다.
하지만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여러분의 이 계절을 낭비하고 계시지 않습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하나님은 여러분을 만들어 가고 계십니다. 우리가 할 일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겁니다. 그 신뢰 위에서 오늘 하루를 충실히 살아가는 것, 그것이 바로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시는 하나님을 믿는 신앙의 실제 모습입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붙든 말씀의 핵심을 한 문장으로 기억하십시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신다. 그 하나님은 역사 안에 직접 오셔서 십자가와 부활로 가장 완전한 구원의 때를 이루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분이 우리의 기다림을 모르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분이 우리의 계절을 잊으신 것이 아닙니다. 그분은 지금도 우리의 모든 때를 손에 쥐고 계십니다.
지금 기다리고 있는 그 기도제목, 아직 응답받지 못한 것 같아서 포기하고 싶었던 그 간구를, 오늘 밤 다시 한번 하나님 손에 올려드리십시오. 내 때를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때를 신뢰하며 기다리는 믿음의 자리로 다시 서는 겁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오늘 이 저녁 말씀 앞에 나아온 성도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우리가 하나님의 때를 신뢰하지 못하고 조급해했던 것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내 뜻을 앞세우며 주님의 인도하심을 의심했던 연약함을 긍휼히 여겨 주시옵소서.
이제 우리의 모든 계절을 주님의 손에 드립니다. 기다림의 시간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허락하여 주시고,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시는 주님을 온전히 신뢰하며 오늘 하루를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십자가에서 가장 완전한 때를 이루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