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ue Faith Church 말씀 · 주일 아침 예배

외로운 자의 아버지
가족 가운데 두시는 하나님

☀️ 2026년 6월 7일 주일 📖 주일 아침 예배 ⏱ 낭독 약 10분
"그의 거룩한 처소에 계신 하나님은 고아의 아버지시며 과부의 재판장이시라 하나님이 고독한 자들은 가족과 함께 살게 하시며 갇힌 자들은 이끌어 내사 형통하게 하시느니라"
— 시편 68:5-6 —
✝ 말씀 낭독
낮고 차분한 목소리 · 약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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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 아침, 한 가지 풍경을 떠올리며 말씀을 시작하려 합니다.

명절 연휴가 끝난 어느 일요일 저녁, 한 30대 청년이 혼자 사는 원룸에 돌아왔습니다. 온 가족이 모였던 큰집을 나와 다시 혼자만의 공간으로 돌아온 그 순간, 현관문을 닫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고 합니다. 사람들 속에 있다가 혼자가 되는 그 낙차, 그 적막.

여러분, 혹시 이 마음을 아십니까?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는 그 어느 때보다 연결된 시대입니다. 손안의 작은 화면으로 수백 명과 이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사람들은 그 어느 때보다 외롭다고 말합니다.

특히 30대는 더욱 그렇습니다. 결혼, 취업, 관계, 미래에 대한 무게를 홀로 짊어진 채, 누구에게도 쉽게 털어놓지 못하는 고독을 안고 살아갑니다.

바로 이 자리에, 오늘 시편 기자의 노래가 찾아옵니다.

"그의 거룩한 처소에 계신 하나님은 고아의 아버지시며 과부의 재판장이시라. 하나님이 고독한 자들은 가족과 함께 살게 하시며 갇힌 자들은 이끌어 내사 형통하게 하시거니와, 오직 거역하는 자들의 거처는 메마른 땅이로다."
— 시편 68:5-6 —

시편 68편은 다윗이 지은 승전의 노래입니다. 언약궤가 옮겨지며 하나님께서 왕으로 행진하시는 장엄한 장면을 그립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위대하신 왕의 첫 번째 모습이 전쟁의 용사가 아니라 고아의 아버지요 과부의 재판장이십니다.

높이 계신 하나님께서 가장 낮은 자를 가장 먼저 살피신다는 것 — 이것이 오늘 본문의 심장입니다.

고대 사회에서 고아와 과부는 보호자가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세상의 법정에서 변호해 줄 사람이 없었고, 빼앗겨도 호소할 곳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친히 말씀하십니다. "내가 그 아이의 아버지가 되겠다. 내가 그 여인의 재판장이 되겠다."

여기서 "재판장"이라는 말은 단지 판결하는 분이 아니라, 약자의 편에 서서 그의 권리를 되찾아 주시는 변호자를 뜻합니다.

이 말씀이 십자가에서 어떻게 완성되었는지 보십시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 마태복음 27:46 —

아버지께 버림받으신 그 고아의 자리, 그 철저한 고독의 자리를 예수님께서 친히 걸어가셨습니다.

왜입니까?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시기 위해서입니다.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 로마서 8:15 —

예수님이 버림받으셨기에, 우리는 결코 버림받지 않습니다.

오늘 아침, 마음 깊은 곳에서 "나는 혼자다"라고 속삭이는 분이 계시다면, 그 거짓말을 십자가 앞에 내려놓으십시오. 여러분의 진짜 신분은 고아가 아니라 자녀입니다.

외로움의 한복판에서 "아버지"라고 부르십시오. 그 한마디가 모든 것을 바꿉니다.

하나님은 외로운 자를 단지 위로만 하지 않으십니다. 그를 가족 가운데 두십니다.

즉, 하나님의 구원은 개인을 향한 것일 뿐 아니라, 공동체로 부르시는 일입니다.

우리가 흔히 신앙을 "나와 하나님의 개인적인 관계"라고만 여깁니다. 물론 그것도 귀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거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외로운 한 사람을 건져내실 때, 그를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 심으십니다.

저는 한 자매를 압니다. 타지에서 직장 생활을 하며 몇 년간 교회를 멀리했던 분입니다. 어느 주일, 외로움에 못 이겨 우연히 예배당 문을 두드렸습니다. 그런데 한 권사님이 그 자매의 손을 잡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혼자 왔어요? 우리 같이 점심 먹어요."

그 한 끼의 식사가 그를 다시 신앙으로 돌아오게 했습니다.

가족이 된다는 것은 거창한 일이 아닙니다. 손을 잡고, 함께 밥을 먹고, 곁에 있어 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이 가족이 바로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 에베소서 2:19 —

예수님의 십자가는 하나님과 우리를 화목하게 하셨을 뿐 아니라, 흩어졌던 우리를 한 가족으로 모으셨습니다.

우리 교회 안에 오늘도 혼자 들어와 혼자 나가는 누군가가 있습니다. 이번 한 주, 그 한 사람에게 먼저 다가가 이름을 물어보십시오. "같이 식사하실래요?" 이 한마디가 누군가에게는 하나님이 보내신 가족의 손길이 될 것입니다.

외로움은 종종 우리를 가둡니다. 마음의 감옥, 과거의 상처, 끊을 수 없는 습관, 자신을 향한 정죄. 우리는 그 안에 스스로 갇혀 빠져나오지 못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갇힌 자를 "이끌어 내신다"고 하십니다. 단지 문을 열어 주시는 정도가 아닙니다. 직접 손을 잡고 끌어내시고, 메마른 땅이 아니라 형통한 자리로 인도하십니다.

한 형제의 이야기를 나눕니다. 사업에 실패하고 빚에 눌려 1년 가까이 사람을 피해 방 안에만 머물던 분이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을 "실패한 인생"의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그러나 한 성도의 끈질긴 권유로 다시 예배의 자리에 섰을 때, 그는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나를 정죄하는 것은 하나님이 아니라 나 자신이었구나."

형통은 환경이 바뀌는 것이 아니라, 갇힌 마음이 풀려나는 데서 시작됩니다.

이 모든 것의 열쇠가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 누가복음 4:18 —

예수님께서 친히 죄와 사망의 감옥에 들어가셨습니다. 무덤이라는 가장 깊은 감옥에 갇히셨다가, 사흘 만에 그 문을 부수고 나오셨습니다. 그분의 부활이 우리 부활의 보증입니다.

지금 여러분을 가두고 있는 감옥이 무엇입니까? 그 문 앞에서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십시오. 그분은 이미 그 감옥을 지나오신 분입니다.

혼자 힘으로 나오려 애쓰지 마시고, 이끌어 내시는 그분의 손을 붙드십시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말씀을 한 문장으로 정리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높이 계시되,
가장 낮고 외로운 자를
가족 가운데 두시는 아버지이십니다.

그분은 고아의 아버지가 되시고, 흩어진 자를 가족으로 모으시며, 갇힌 자를 이끌어 내어 형통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안에서 우리에게 이루어졌습니다.

오늘 한 가지 구체적인 결단을 드립니다. 이번 한 주, 두 가지를 행하십시오.

외로움이 찾아올 때 "나는 자녀다, 나에게는 아버지가 계시다"라고 고백하십시오.

내 주변의 외로운 한 사람에게 먼저 손을 내미십시오. 받은 가족의 사랑을, 한 사람에게 흘려보내는 것입니다.

우리가 받은 은혜는 흐를 때 비로소 살아납니다.

예수님께서 버림받으셨기에 우리는 받아들여졌습니다. 예수님께서 갇히셨기에 우리는 자유롭습니다. 이 복음이 오늘도 외로운 우리의 가장 든든한 가족입니다.

은혜로우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 외로운 자를 가족 가운데 두시는 주님의 사랑을 보았습니다. 우리 안에 여전히 '혼자'라는 거짓말이 남아 있다면 회개합니다. 받은 사랑을 흘려보내지 못하고 움켜쥐었던 인색함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이제 우리를 주님의 가족으로 헌신하게 하시고, 우리 곁의 외로운 한 영혼을 품게 하옵소서. 마음의 감옥에 갇힌 자들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이끌어 내어 주옵소서. 이 모든 말씀, 우리를 위해 버림받으시고 다시 사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기도 —

나는 자녀입니다 · 가족이 되어주는 한 주 · 받은 사랑을 흘려보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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