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 아침, 한 가지 풍경을 떠올리며 말씀을 시작하려 합니다.
명절 연휴가 끝난 어느 일요일 저녁, 한 30대 청년이 혼자 사는 원룸에 돌아왔습니다. 온 가족이 모였던 큰집을 나와 다시 혼자만의 공간으로 돌아온 그 순간, 현관문을 닫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고 합니다. 사람들 속에 있다가 혼자가 되는 그 낙차, 그 적막.
여러분, 혹시 이 마음을 아십니까?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는 그 어느 때보다 연결된 시대입니다. 손안의 작은 화면으로 수백 명과 이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사람들은 그 어느 때보다 외롭다고 말합니다.
특히 30대는 더욱 그렇습니다. 결혼, 취업, 관계, 미래에 대한 무게를 홀로 짊어진 채, 누구에게도 쉽게 털어놓지 못하는 고독을 안고 살아갑니다.
바로 이 자리에, 오늘 시편 기자의 노래가 찾아옵니다.
시편 68편은 다윗이 지은 승전의 노래입니다. 언약궤가 옮겨지며 하나님께서 왕으로 행진하시는 장엄한 장면을 그립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위대하신 왕의 첫 번째 모습이 전쟁의 용사가 아니라 고아의 아버지요 과부의 재판장이십니다.
높이 계신 하나님께서 가장 낮은 자를 가장 먼저 살피신다는 것 — 이것이 오늘 본문의 심장입니다.
고대 사회에서 고아와 과부는 보호자가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세상의 법정에서 변호해 줄 사람이 없었고, 빼앗겨도 호소할 곳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친히 말씀하십니다. "내가 그 아이의 아버지가 되겠다. 내가 그 여인의 재판장이 되겠다."
여기서 "재판장"이라는 말은 단지 판결하는 분이 아니라, 약자의 편에 서서 그의 권리를 되찾아 주시는 변호자를 뜻합니다.
이 말씀이 십자가에서 어떻게 완성되었는지 보십시오.
아버지께 버림받으신 그 고아의 자리, 그 철저한 고독의 자리를 예수님께서 친히 걸어가셨습니다.
왜입니까?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시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이 버림받으셨기에, 우리는 결코 버림받지 않습니다.
오늘 아침, 마음 깊은 곳에서 "나는 혼자다"라고 속삭이는 분이 계시다면, 그 거짓말을 십자가 앞에 내려놓으십시오. 여러분의 진짜 신분은 고아가 아니라 자녀입니다.
외로움의 한복판에서 "아버지"라고 부르십시오. 그 한마디가 모든 것을 바꿉니다.
하나님은 외로운 자를 단지 위로만 하지 않으십니다. 그를 가족 가운데 두십니다.
즉, 하나님의 구원은 개인을 향한 것일 뿐 아니라, 공동체로 부르시는 일입니다.
우리가 흔히 신앙을 "나와 하나님의 개인적인 관계"라고만 여깁니다. 물론 그것도 귀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거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외로운 한 사람을 건져내실 때, 그를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 심으십니다.
저는 한 자매를 압니다. 타지에서 직장 생활을 하며 몇 년간 교회를 멀리했던 분입니다. 어느 주일, 외로움에 못 이겨 우연히 예배당 문을 두드렸습니다. 그런데 한 권사님이 그 자매의 손을 잡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혼자 왔어요? 우리 같이 점심 먹어요."
그 한 끼의 식사가 그를 다시 신앙으로 돌아오게 했습니다.
가족이 된다는 것은 거창한 일이 아닙니다. 손을 잡고, 함께 밥을 먹고, 곁에 있어 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이 가족이 바로 교회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하나님과 우리를 화목하게 하셨을 뿐 아니라, 흩어졌던 우리를 한 가족으로 모으셨습니다.
우리 교회 안에 오늘도 혼자 들어와 혼자 나가는 누군가가 있습니다. 이번 한 주, 그 한 사람에게 먼저 다가가 이름을 물어보십시오. "같이 식사하실래요?" 이 한마디가 누군가에게는 하나님이 보내신 가족의 손길이 될 것입니다.
외로움은 종종 우리를 가둡니다. 마음의 감옥, 과거의 상처, 끊을 수 없는 습관, 자신을 향한 정죄. 우리는 그 안에 스스로 갇혀 빠져나오지 못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갇힌 자를 "이끌어 내신다"고 하십니다. 단지 문을 열어 주시는 정도가 아닙니다. 직접 손을 잡고 끌어내시고, 메마른 땅이 아니라 형통한 자리로 인도하십니다.
한 형제의 이야기를 나눕니다. 사업에 실패하고 빚에 눌려 1년 가까이 사람을 피해 방 안에만 머물던 분이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을 "실패한 인생"의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그러나 한 성도의 끈질긴 권유로 다시 예배의 자리에 섰을 때, 그는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나를 정죄하는 것은 하나님이 아니라 나 자신이었구나."
형통은 환경이 바뀌는 것이 아니라, 갇힌 마음이 풀려나는 데서 시작됩니다.
이 모든 것의 열쇠가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죄와 사망의 감옥에 들어가셨습니다. 무덤이라는 가장 깊은 감옥에 갇히셨다가, 사흘 만에 그 문을 부수고 나오셨습니다. 그분의 부활이 우리 부활의 보증입니다.
지금 여러분을 가두고 있는 감옥이 무엇입니까? 그 문 앞에서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십시오. 그분은 이미 그 감옥을 지나오신 분입니다.
혼자 힘으로 나오려 애쓰지 마시고, 이끌어 내시는 그분의 손을 붙드십시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말씀을 한 문장으로 정리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높이 계시되,
가장 낮고 외로운 자를
가족 가운데 두시는 아버지이십니다.
그분은 고아의 아버지가 되시고, 흩어진 자를 가족으로 모으시며, 갇힌 자를 이끌어 내어 형통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안에서 우리에게 이루어졌습니다.
오늘 한 가지 구체적인 결단을 드립니다. 이번 한 주, 두 가지를 행하십시오.
외로움이 찾아올 때 "나는 자녀다, 나에게는 아버지가 계시다"라고 고백하십시오.
내 주변의 외로운 한 사람에게 먼저 손을 내미십시오. 받은 가족의 사랑을, 한 사람에게 흘려보내는 것입니다.
우리가 받은 은혜는 흐를 때 비로소 살아납니다.
예수님께서 버림받으셨기에 우리는 받아들여졌습니다. 예수님께서 갇히셨기에 우리는 자유롭습니다. 이 복음이 오늘도 외로운 우리의 가장 든든한 가족입니다.
나는 자녀입니다 · 가족이 되어주는 한 주 · 받은 사랑을 흘려보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