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 여러분, 오늘도 이 자리에 함께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한 주의 정중앙, 수요일 저녁입니다. 월요일의 설렘도, 금요일의 홀가분함도 아닌, 딱 중간 지점. 어쩌면 가장 지치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바로 그 자리에서 우리가 이렇게 모였습니다. 하나님 앞에, 말씀 앞에.
오늘 우리가 함께 묵상할 본문은 야고보서 1장입니다. 오늘 말씀의 핵심을 한 줄로 먼저 드리겠습니다.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처음 들으면 어색하게 느껴지실 수도 있습니다. 억지로 웃으라는 말처럼 들리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야고보는 우리에게 감정을 속이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시험의 가장 깊은 본질을 꿰뚫어 보고 있었습니다.
이 편지를 쓴 야고보는 예수님의 형제이자 초대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였습니다. 그가 편지를 보낸 대상은 로마 제국 전역에 흩어진 유대인 그리스도인들, 박해를 피해 고향을 떠나 낯선 땅에서 살아가던 사람들, 가난과 차별과 핍박 속에 날마다 믿음을 지켜야 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바로 그들에게 야고보는 씁니다. "기쁘게 여기라."
여기서 "시련"으로 번역된 헬라어 단어는 도키미온입니다. 이 단어는 금속 세공사가 금이나 은을 불 속에 넣어 그 순도를 검증하는 과정을 뜻하는 말입니다. 금은 불 앞에서 녹지 않습니다. 오히려 불 속에서 불순물이 걸러지고, 더욱 순수한 금이 되어 나옵니다.
성도 여러분, 지금 여러분이 겪고 있는 시험이 무엇인지 저는 다 알지 못합니다. 건강의 문제일 수도 있고, 가정의 갈등일 수도 있습니다. 직장의 어려움, 재정적 압박, 아니면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마음속 깊은 외로움과 지침일 수도 있습니다.
그 시험이 어떤 형태이든, 야고보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 시험이 너의 믿음을 태우고 있는 것이 아니라, 태우면서 정제하고 있다"고. 진짜 금은 불 속에서도 금입니다. 진짜 믿음은 시험 속에서도 믿음입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무엇입니까? 인내입니다. 헬라어 후포모네는 "아래에서 버티다", 곧 무게를 견디면서도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를 악물고 참는 소극적 인내가 아니라, 시험을 딛고 더 깊은 믿음의 자리로 나아가는 적극적 인내입니다.
야고보는 그 최종 목표를 4절에서 이렇게 밝힙니다.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이 시험을 허락하시는 이유는 우리를 부족한 상태로 두기 위함이 아닙니다. 오히려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온전한 사람으로 세우기 위함입니다.
도공의 손이 진흙을 누를 때 진흙 입장에서는 압박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손이 빚어내는 것은 아름다운 그릇입니다. 하나님은 지금 여러분을 버리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지금 여러분을 빚고 계십니다.
야고보는 시험을 통과하는 구체적인 방법을 알려 줍니다. 혼자 버티려 하지 말고,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지혜는 단순한 지식이나 정보가 아닙니다. 시험의 한가운데에서 하나님의 눈으로 상황을 볼 수 있는 능력, 그것이 지혜입니다. 우리가 시험 속에 있을 때 우리의 시야는 좁아집니다. 고통이 전부처럼 느껴지고, 출구가 보이지 않습니다. 그때 필요한 것이 바로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입니다.
그런데 야고보는 그 지혜를 어디서 구하라고 합니까? 하나님께 직접 구하라고 합니다. 그것도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이 표현이 참으로 은혜롭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도움을 청할 때 "왜 이것도 모르냐"고 책망하지 않으십니다. "왜 믿음이 아직도 이 모양이냐"고 꾸짖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아낌없이, 풍성하게, 기꺼이 지혜를 주십니다.
성도 여러분, 혹시 지금 시험 앞에서 혼자 해결하려고 애쓰고 계시지는 않으십니까? 나의 경험, 나의 판단, 나의 의지력만으로 이 상황을 뚫으려고 하고 계시지는 않으십니까?
기도는 우리의 약함을 인정하는 행위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기도는 가장 강력한 힘에 접속하는 행위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함께 보시는 하나님께 지혜를 구할 때, 우리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닙니다.
6~7절은 또 이렇게 경고합니다.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구하면서 동시에 의심한다면, 그것은 한 손으로 문을 열고 다른 손으로 문을 닫는 것과 같습니다. 문은 열리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지혜를 구할 때는 "주시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나아가야 합니다.
오늘 밤 예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실 때, 가장 먼저 무릎을 꿇고 이렇게 기도해 보시겠습니까? "하나님, 저는 이 상황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지혜를 주십시오." 그 단순한 기도가 시험을 이기는 첫걸음입니다.
야고보는 시험을 이기는 것이 끝이 아니라 오히려 시작임을 알려 줍니다. "복이 있나니" — 헬라어로 마카리오스입니다. 예수님께서 산상수훈에서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하실 때 쓰신 바로 그 단어입니다.
이 복은 환경이 좋을 때 찾아오는 기분 좋은 감정이 아닙니다. 이 복은 시험을 견딘 자의 삶 깊은 곳에 하나님이 새겨 주시는 복, 세상이 빼앗아 갈 수 없는 복입니다.
당시 그리스 운동 경기에서는 승자에게 월계관을 씌워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 월계관은 시간이 지나면 시들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은 시들지 않습니다. 시험을 참고, 믿음을 지키고, 끝까지 하나님을 사랑한 자들에게 주어지는 영원한 상급입니다.
지금의 시험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시험을 통해 얻게 될 것은 영원합니다. 시험은 우리를 잠시 누릅니다. 그러나 그 시험을 통과한 자에게 하나님은 영원한 생명의 면류관을 예비해 두셨습니다.
여기에 중요한 전제가 있습니다.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면류관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에게 주어집니다. 편안할 때는 누구나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시험이 올 때, 그 사랑이 진짜인지가 드러납니다. 모든 것이 흔들릴 때도 여전히 하나님을 붙드는 것,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 그것이 진짜 사랑입니다.
지금 겪고 있는 시험을 하나님 앞에 솔직하게 내어 놓으십시오. 억지로 괜찮은 척하지 마시고, "이것이 연단임을 압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이 너무 힘듭니다. 지혜를 주십시오"라고 기도해 보십시오. 하나님은 꾸짖지 않으십니다. 후히 들으십니다.
이번 주 단 한 번, 시험을 바라보는 시각을 바꿔 보십시오. "이 시험이 나를 무너뜨리고 있는가"가 아니라, "이 시험을 통해 하나님이 나를 어떤 사람으로 빚어 가고 계신가"를 물어보십시오. 관점 하나가 바뀔 때, 그 자리가 무너지는 곳이 아니라 빚어지는 곳으로 바뀌기 시작합니다.
생명의 면류관을 향해
우리를 빚어 가시는 하나님의 손길입니다.
이번 한 주, 시험 앞에서 도망가지 마십시오. 그 자리에 서서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며, 인내로 한 걸음씩 걸어 나가십시오. 하나님이 시작하신 일은 반드시 완성됩니다.
도망가지 말고 · 지혜를 구하며 · 빚어지는 자리에 서는 한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