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말씀을 시작하기 전에 잠깐 한 장면을 상상해 보시겠습니까?
삼십대 초반의 한 직장인이 있었습니다. 회사에서도 인정받고, 가정도 꾸렸고, 겉으로 보기엔 아무 문제가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아버지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알고 보니 아버지는 아들이 이십대 초반에 충동적으로 빌린 빚을 몰래 갚아주기 위해 보증을 서셨던 겁니다. 자신의 죄가 아버지를 이 자리에 오게 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된 순간, 그 아들은 그날 밤 처음으로 엉엉 울었다고 했습니다. "아버지가 내 대신 고난을 당하고 계셨구나."
성도 여러분, 오늘 이사야 53장이 바로 그 이야기입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2,700년 전, 선지자 이사야는 아직 오시지 않은 한 분의 이야기를 기록했습니다. 그리고 그 예언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완전히 성취되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윗 같은 위대한 왕, 화려한 군복을 입고 적을 무찌르는 정복자를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이사야가 보여주는 종은 전혀 달랐습니다.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주목받지 못하는 존재입니다.
어느 미술관에 오래되고 낡아 보이는 그림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그냥 지나쳤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저명한 전문가가 말했습니다. "이것은 렘브란트의 진품입니다." 그 순간부터 사람들은 그 그림 앞에 멈춰 서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도 그러하십니다. 세상의 눈으로 보면 십자가에서 처형된 목수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눈으로 보면 온 우주의 창조주이시며 유일한 구원자이십니다.
3절 끝의 고백이 우리를 찌릅니다.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특히 30대는 가장 바쁜 시간을 보내는 세대입니다. 육아와 직장과 사회적 관계 속에서 예수님이 밀려나 있지는 않습니까? 매일 아침 "예수 그리스도가 오늘도 나의 주님이십니다"라는 고백으로 하루를 시작해 보시기 바랍니다.
"찔림"은 히브리어 할랄 — 치명적으로 관통당한다는 뜻입니다. "상함"은 다까 — 으깨지고 분쇄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6절의 이 고백이 핵심입니다.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이것이 대속입니다. 내가 받아야 할 형벌을, 다른 분이 대신 받으셨다는 것입니다.
새벽에 화재가 났습니다. 아버지는 잠을 자던 아이 방으로 뛰어들었습니다. 아이는 상처 하나 없이 구출되었지만, 아버지는 온몸에 화상을 입었습니다. 아이가 살 수 있었던 이유는 아버지가 그 상처를 대신 받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바로 그러하십니다.
오늘 이 시간, 예수님의 찔리심이 바로 나의 허물 때문임을 가슴으로 받으시기 바랍니다. 여전히 짊어지고 있는 죄의 짐이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이 그 모든 것을 남김없이 덮습니다.
이야기는 고난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하게 여길 것이라"(이사야 53:11) — 이것이 부활의 예언입니다.
찔리신 그분이, 상하신 그분이, 멸시를 받으신 그분이 지금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십니다. 그리고 그 영광을 예수님 혼자 누리시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와 함께 나누십니다.
우리도 이 땅에서 고난을 당합니다. 30대의 현실 속에서, 자녀를 키우는 힘듦, 직장의 압박, 미래에 대한 불안. 그럴 때 이사야 53장을 기억하십시오. 고난은 끝이 아닙니다. 그분이 먼저 그 길을 걸으셨습니다. 그분이 고난을 통과해 부활에 이르셨듯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당신도 이 고난을 통과할 것입니다. 포기하지 마십시오.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이 한 구절을 이번 한 주 붙들고 사십시오. 힘들 때마다, 지칠 때마다 고백하십시오.
"그분이 찔리셨기 때문에 내가 평화를 누린다."
그리고 매일 아침 하루를 시작하기 전에, "예수 그리스도가 오늘도 나의 주님이십니다"라고 고백하십시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오늘도 우리의 유일한 근거이며 유일한 소망입니다.
찔리심으로 우리의 평화 · 부활로 우리의 소망 · 오늘도 나의 주님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