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 여러분, 수요일 저녁입니다. 성도님들은 "사랑한다"는 말, 요즘 얼마나 자주 하셨나요?
연애할 때는 자연스럽게 나오던 말인데, 결혼하고 나면 오히려 줄어들죠. 직장에서 치이고, 아이를 키우느라 지치고, 서로 바쁘다는 핑계로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오히려 가장 인색해집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펼쳐 볼 고린도전서 13장은 흔히 '사랑장'이라고 불립니다. 결혼식에서 자주 읽히고, 예쁜 액자에도 새겨지는 말씀이지요. 그런데 오늘 저는 이 말씀을 그냥 아름다운 시처럼이 아니라, 우리의 현실을 정확히 꿰뚫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함께 붙들어 드리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이 본문은 사랑을 찬양하는 노래가 아니라, 사랑이 무엇인지 제대로 모르는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교정이기 때문입니다.
세 가지로 나누어 묵상하겠습니다.
고린도 교회의 상황을 먼저 이해해야 이 말씀이 선명하게 다가옵니다. 고린도 교회는 성령의 은사가 넘치는 교회였습니다.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고, 기적도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은사를 자랑하고, 서로 시기하고, 파벌을 나누고 있었습니다.
그 교회에 바울이 씁니다.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꽹과리는 시끄럽습니다. 사람들의 주목을 끌고, 큰 소리를 냅니다. 그런데 결국 남는 것은 소음뿐입니다. 사랑 없는 모든 능력, 사랑 없는 모든 헌신, 사랑 없는 모든 신앙 활동은 결국 꽹과리 소음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2절은 더 강하게 선언합니다.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도, 모든 지식을 알아도, 산을 옮길 믿음이 있어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라고.
성도 여러분, 우리는 때로 사랑보다 능력을 추구합니다. 더 많이 알고, 더 잘 가르치고, 더 크게 섬기려 합니다. 그것이 나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사랑의 뿌리에서 나오지 않으면, 하나님 앞에서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오늘 이 말씀이 선포합니다.
4절부터 8절은 사랑의 얼굴을 아주 구체적으로 보여줍니다. 주목할 것은 사랑을 감정이나 느낌으로 묘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전부 행동입니다. "오래 참고,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자랑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선택의 문제입니다. 느낌이 올 때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느낌이 없어도 사랑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오래 참음"은 헬라어로 마크로쒸미아입니다. "크다"는 뜻의 마크로스와 "영혼"을 뜻하는 쒸모스의 합성어입니다. 문자적으로는 "큰 영혼"이라는 뜻입니다. 영혼이 큰 사람은 작은 것에 쉽게 무너지지 않습니다. 상대방의 결점 앞에서, 갑자기 닥친 실망 앞에서 허물어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온유함"은 약함이 아닙니다. 온유함은 힘이 있지만 그 힘을 절제하는 것입니다. 군마가 훈련을 통해 조련되듯, 온유함은 훈련된 힘입니다.
성도 여러분, 지금 당장 고린도전서 13장 4절부터 7절을 읽으면서 사랑 자리에 내 이름을 넣어 보십시오. "홍길동은 오래 참고, 홍길동은 온유하며, 홍길동은 시기하지 아니하며…" 어느 지점에서 문장이 어색해집니까? 그 지점이 바로 오늘 하나님이 우리를 다듬고 싶으신 자리입니다.
그렇다면 이 사랑을 어떻게 실천할 수 있습니까? 이 사랑은 우리가 만들어내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한 청년을 상담한 적이 있습니다. 직장에서 너무 힘든 동료가 있는데, 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도저히 안 된다고 했습니다. 저는 조심스럽게 물었습니다. "그 사람을 사랑하려고 노력하기 전에, 오늘 아침 하나님 앞에 얼마나 앉아 있었나요?" 그 청년은 조용히 고개를 숙였습니다.
사랑은 우리가 만들어내는 것이 아닙니다. 날마다 하나님 앞에 먼저 받는 것입니다. 그 자리가 우리 사랑의 수원지입니다.
예수님은 "서로 사랑하라"고만 하지 않으셨습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라고 먼저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서로 사랑함은,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사랑을 받아 흘려보내는 것입니다. 그 순서를 놓치면, 우리의 사랑은 결국 지쳐 쓰러집니다.
저는 한 부부를 오랫동안 지켜봤습니다. 두 분 모두 성격이 강하고 갈등이 잦았습니다. 어느 날 형제님이 조용히 제게 말했습니다. "목사님, 요즘 매일 아침 아내를 위해 기도하는데, 이상하게 화가 덜 납니다." 아내를 변화시키려는 노력을 내려놓고, 먼저 하나님 앞에 앉는 것, 그것이 그 관계를 조금씩 바꾸기 시작했습니다.
사랑은 상대방이 먼저 변해야 가능한 것이 아닙니다. 내가 먼저 은혜 앞에 서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완전히 변화된 후에 사랑하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 먼저 사랑하셨습니다. 우리가 이웃에게 흘려보낼 사랑의 모양이 바로 이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3장 4~7절을 읽으면서 사랑 자리에 내 이름을 넣어 보십시오. 어느 지점에서 문장이 어색해집니까? 그 지점이 오늘 하나님이 다듬고 싶으신 자리입니다. 그 한 가지를 붙들고 이번 주 기도해 보십시오.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먼저 하나님 앞에 앉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십시오. 그 사람을 바꾸려는 기도가 아니라, 내가 먼저 은혜를 받는 시간. 그 5분이 오늘 하루의 관계를 바꿉니다.
그 사랑의 수원지는 하나님이십니다.
먼저 받아야 흘려보낼 수 있습니다.
이번 한 주, 꽹과리 소음이 아닌 진짜 사랑으로 살아가는 한 주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내 이름을 넣어 읽는 사랑장 · 수원지에서 먼저 받기 · 꽹과리가 아닌 사랑으로 사는 한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