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바른믿음교회 성도 여러분, 수요 저녁 예배를 시작하겠습니다.
삶이 갑자기 무거워지는 순간이 있습니다. 직장에서 열심히 하고 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이유 모를 무기력함이 찾아옵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 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인데, 마음 깊은 곳에서 '내가 지금 제대로 살고 있는 걸까' 하는 물음이 올라옵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면서 책임감은 커지는데, 정작 내 영혼이 얼마나 피곤한지는 돌아볼 틈이 없습니다.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데도 왜 이렇게 힘이 없을까, 기도를 해도 벽에 대고 말하는 것 같고, 예배를 드려도 무언가 변한 게 없는 것 같고.
오늘 우리가 함께 살펴볼 말씀은 에베소서 6장입니다. 이 본문은 우리가 왜 지쳐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다시 일어설 수 있는지를 아주 정확하게 짚어줍니다. 그 핵심은 바로 영적 무장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막연히 버티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무장하고 싸우기를 원하십니다.
에베소서는 사도 바울이 로마 감옥에서 쓴 편지입니다. 바울은 지금 쇠사슬에 묶인 채로, 자신을 지키고 있는 로마 군인들을 매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투구와 흉배와 방패와 칼, 그 완전한 무장을 바라보면서 바울은 영적인 진리를 발견했습니다. 하나님도 당신의 자녀들에게 이런 완전한 무장을 주신다는 것을.
에베소는 당시 소아시아에서 가장 큰 도시 중 하나였습니다. 화려한 문명, 강력한 상업, 아르테미스 여신 숭배로 가득 찬 영적으로 매우 어두운 곳이었습니다. 그 도시에서 믿음을 지키며 살아간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에베소 성도들은 지금 우리처럼, 세상 속에서 믿음을 붙잡으려고 애쓰고 있었습니다.
"끝으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먼저 바울이 가장 처음에 하는 말에 주목하십시오.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강건하라'가 아닙니다. '강건하여지고'입니다. 이건 수동태입니다. 우리 스스로 강해지는 게 아니라, 주님 안에서 강해지는 겁니다. 그 힘의 원천은 내 의지나 내 노력이 아니라, 주님의 힘의 능력입니다.
30대가 되면 이 차이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피부로 느끼게 됩니다. 20대에는 열정 하나로 버텼습니다. 그런데 30대가 되면 현실의 무게가 달라집니다. 직장에서의 압박, 관계의 복잡함, 육아의 고단함. 열정만으로는 버티기 어려운 순간이 반드시 옵니다. 바로 그때 우리는 이 말씀 앞에 서야 합니다. 내 힘으로 버티려 하지 말고, 주님의 힘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것을.
우리는 대부분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게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를 괴롭히는 직장 상사, 나를 이해 못 하는 배우자, 나를 상처 입힌 가족. 그 사람들이 내 적인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래서 그 사람들과 싸우느라 에너지를 다 씁니다. 그러나 바울은 말합니다. 진짜 적은 다른 곳에 있다고.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세력들이 우리의 진짜 대적입니다.
한 성도님이 직장 동료와의 갈등으로 너무 힘들어서 몇 달을 그 사람을 미워하며 살았습니다. 기도도 되지 않고, 예배도 집중이 안 되고, 말씀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새벽기도 중에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마음에 주셨습니다. 네 씨름은 그 사람이 아니라고. 그 순간 그분은 오히려 그 동료를 위해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놀랍게도 그 기도를 시작한 이후로, 상황이 바뀌기 전에 내 마음이 먼저 풀리기 시작했다고 했습니다. 싸움의 대상을 바꾸었을 때 비로소 자유가 찾아왔습니다.
이 갑주는 내가 스스로 만들어 입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겁니다. 그리고 그 갑주의 중심에는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허리띠는 갑옷 전체를 고정시키는 기초입니다. 허리띠가 없으면 나머지 갑옷이 다 흘러내립니다. 진리가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우리가 매일 진리를 붙드는 것, 그건 바로 예수님을 붙드는 겁니다.
흉배는 심장을 보호합니다. 원수가 가장 먼저 공격하는 곳이 바로 우리의 정체성입니다. "너는 가치 없는 존재야, 너 같은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라고." 이 의는 내가 쌓아올린 의가 아닙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우리의 흉배입니다. 원수가 우리의 과거를 들이밀 때, 우리는 선언할 수 있습니다. 내 죄는 이미 십자가에서 용서받았다고.
불이 붙은 화살이 날아오면 갑옷만으로는 막을 수 없습니다. 방패로 막아 불을 꺼야 합니다. 원수의 공격이 그런 겁니다. 갑자기 날아오는 의심, 공포, 절망, 유혹의 화살. 믿음이 그것을 막습니다. 믿음은 감정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신실하시다는 사실에 대한 신뢰입니다.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극심한 박해 속에서 어떤 선교사는 두려움이 몰려올 때마다 이 구절 하나를 반복해서 손으로 썼다고 합니다. 감정이 다 식어도, 상황이 다 무너져도, 이 말씀 하나를 붙들었더니 버틸 수 있었다고 했습니다. 믿음의 방패는 거창한 게 아닙니다. 두려울 때 하나님의 말씀 한 구절을 붙드는 것, 그게 방패를 드는 겁니다.
전신 갑주는 전시관에 걸어두는 게 아니라, 매일 아침 입고 나가는 겁니다. 바울은 말합니다. "모든 것을 행한 후에 서라." 이 말은 포기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다 무너진 것 같아도 일어서라는 말입니다.
전신 갑주를 입는 가장 구체적인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매일 말씀을 붙드는 것입니다. 바울은 성령의 검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했습니다. 하루에 말씀 한 구절이라도 붙드는 것, 그게 검을 들고 싸우는 겁니다.
또 하나는 기도입니다. 바울은 전신 갑주를 말한 바로 직후 18절에서 이어갑니다.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갑주를 입었는데 하나님과 연결이 끊어져 있다면, 그 갑주는 무거운 짐이 될 뿐입니다. 기도가 그 연결고리입니다.
직장과 육아를 병행하며 너무 지쳐 있던 한 자매님이 있었습니다. 기도할 에너지도 없고, 말씀 볼 시간도 없었습니다. 그분이 시작한 건 딱 하나였습니다. 출근하는 차 안에서 5분간 하나님께 오늘 하루를 맡기는 기도를 드리기 시작한 겁니다.
대단한 기도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 저 오늘 하루 당신의 것입니다." 이 한 마디였습니다. 그런데 그 기도를 시작한 이후, 똑같이 힘든 하루인데 무너지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전신 갑주를 거창하게 입는 게 아닙니다. 매일 아침 하나님 앞에 서는 것, 그게 갑주를 입는 겁니다.
오늘 이 말씀 앞에서 한 가지만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싸움은 이미 승리가 결정된 싸움이라는 겁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원수의 권세를 이미 무너뜨리셨습니다.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여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느니라"
우리가 전신 갑주를 입는 건 싸움을 이기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이미 이기신 예수님 안에서 굳게 서 있기 위해서입니다. 이번 한 주, 매일 아침 하루를 시작하기 전에 딱 5분만 하나님 앞에 서는 시간을 드리십시오. 기도여도 좋고, 말씀 한 구절이어도 좋습니다. 그 5분이 오늘 하루의 갑주를 입는 시간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 이 자리에서 말씀을 들은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우리는 알지 못하는 사이에 사람과 싸우고, 보이는 것들과 씨름하며 지쳐왔습니다. 진짜 싸움을 잊고 살아온 것을 용서해 주십시오.
주님, 우리에게 전신 갑주를 입혀 주십시오. 예수님의 진리로, 십자가의 의로, 믿음의 방패로 우리를 붙들어 주십시오.
매일 아침 주님 앞에 서는 삶으로 우리를 이끌어 주십시오. 이 자리의 모든 성도들이 이번 한 주, 무너지지 않고 오직 예수 안에서 굳게 서게 하여 주십시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