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바른믿음교회 성도 여러분, 주님께서 지으신 새 주일 아침, 이렇게 함께 모여 하나님 앞에 예배드릴 수 있음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분명히 열심히 살았는데, 분명히 잘못한 것도 없는 것 같은데, 마음 어딘가가 늘 허전하고 뭔가 한 가지가 채워지지 않는 느낌. 자녀들도 잘 키웠고, 직장에서도 성실하게 일했고, 교회도 빠지지 않았고, 부모님께도 효도했습니다. 그런데도 가끔 새벽에 눈이 떠지면 마음 한구석이 묘하게 서늘합니다. "나는 잘 살고 있는 걸까. 나는 정말 괜찮은 걸까."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한 사람이 딱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재산도 있었고, 도덕적으로도 흠이 없었고, 심지어 예수님께 달려와 무릎을 꿇을 만큼 간절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결국 슬픈 얼굴로 돌아갔습니다. 오늘 우리는 그 청년의 슬픔 속에서, 사실은 우리 자신의 이야기를 발견하게 될 겁니다.
마가복음 10장 17절에서 시작됩니다. 예수님께서 길을 걸어가시는데, 한 사람이 달려와서 그분 앞에 꿇어앉습니다. 공개적인 장소에서, 달려와서, 무릎을 꿇은 겁니다. 당시 유대 사회에서 어른이, 재산 있는 사람이, 사람들 앞에서 누군가에게 무릎을 꿇는다는 것은 대단히 파격적인 행동이었습니다. 그는 진심으로 간절했습니다.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이 질문 하나에 그의 모든 것이 담겨 있습니다. 그는 영생을 원했습니다.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었습니다. 뭔가를 하면 영생을 얻을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무엇을 해야 하느냐고 물은 겁니다.
예수님의 대답은 예상을 빗나갑니다. 먼저 그가 부른 호칭을 짚어내십니다.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 이 한 마디로 질문을 던지시는 겁니다. 너는 지금 나를 누구로 보고 있느냐.
그러고 나서 계명들을 열거하십니다. 그 청년은 망설임 없이 대답합니다. "선생님이여 이것은 내가 어릴 때부터 다 지켰나이다." 이것은 거짓말이 아니었을 겁니다. 도덕적으로 흠잡을 데 없는 삶, 율법의 외면적 기준을 성실하게 지켜온 삶이었습니다.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사랑하사 이르시되 네게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이 부분이 중요합니다. 예수님은 그를 정죄하려 하신 것이 아닙니다. 꾸짖으려 하신 것이 아닙니다. 사랑하셨습니다. 그 사랑 안에서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들은 청년은 어떻게 했습니까. "그 사람은 재물이 많은 고로 이 말씀으로 인하여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며 가니라."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며 갔습니다.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았지만, 돌아섰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요구하신 것은 단순히 재산을 팔라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말씀의 끝을 보십시오. "와서 나를 따르라." 핵심은 그거였습니다. 재물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서 예수님이 들어오실 자리가 없었던 겁니다. 예수님은 그 청년의 마음 안에서 재물이 차지한 자리를 원하셨습니다.
어느 어머니가 오래된 장롱 하나를 아끼며 살았습니다. 자식들이 새 장롱을 사드리겠다고 해도 한사코 거절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장롱 때문에 햇빛이 들어오는 창이 반쯤 가려져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장롱을 옮기고 나서야 비로소 방 안 가득 빛이 들어왔고, 그 어머니는 "이렇게 밝았었구나" 하고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그 청년의 재물이 딱 그 장롱이었습니다. 나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랫동안 함께한 거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주님이 들어오실 자리를 막고 있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각 사람의 마음 안에도, 그 장롱과 같은 무언가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는 않을까요? 재물일 수도 있고, 오래된 자존심일 수도 있고, 평생 쌓아온 체면일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것을 빼앗으려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하시기에, 더 좋은 것으로 채워주시기 위해 그 자리를 비워달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청년이 근심하며 돌아선 뒤, 제자들이 물었습니다. "그러면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나이까." 그때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서는 그렇지 아니하니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이 한 말씀이 오늘 본문의 전환점입니다. 이 말씀이 없었다면, 이 이야기는 그저 한 청년의 실패 이야기로 끝났을 겁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여기서 소망의 문을 여셨습니다. 내가 못 놓는 것을, 하나님이 놓을 수 있게 하신다는 겁니다.
우리는 흔히 이렇게 생각합니다. 내가 이걸 포기할 수 있을까, 내가 과연 그렇게 살 수 있을까. 그렇게 자신을 바라보면 낙심이 옵니다. 그러나 오늘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너로서는 안 돼도, 하나님으로서는 된다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의 의지력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내 마음을 다루실 수 있도록 허락하는 그 한 걸음입니다.
수십 년을 신앙생활 하면서도 마음속 깊이 내어드리지 못한 것이 있었다는 권사님이 있었습니다. 대수롭지 않아 보이는 것이었는데, 너무 오래 익숙해져서 그것이 주님 앞에 장애가 된다는 것조차 알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느 새벽기도 시간에 조용히 "이것도 제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 드립니다" 하고 내어드렸더니, 오히려 마음이 텅 빈 것 같으면서도 충만해지는 경험을 하셨다고 했습니다. "비워야 채워진다는 말이 그때 비로소 실감이 났다고요." 우리가 못 하는 것을, 하나님이 하시는 거. 그것이 은혜입니다.
그 부자 청년은 슬픈 기색을 띠고 돌아갔습니다. 예수님은 그를 사랑하셨지만, 그는 그 사랑 안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성경이 기록한 결말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결말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먼저가 중요합니다. 모든 것을 버리라는 것이 아니라, 순서를 바로 세우라는 겁니다. 주님이 첫 자리에 계실 때, 나머지 모든 것들도 제자리를 찾게 됩니다. 오늘 이 시간, 그 순서를 다시 세우시기 바랍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우리도 그 청년과 같은 부름을 받고 있습니다. "와서 나를 따르라." 이 부름 앞에서 우리는 두 가지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근심하며 돌아서거나, 아니면 내어드리고 따르거나. 주님의 부르심은 우리에게 무거운 짐을 더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가 지고 있던 짐을 내려놓고, 참된 안식으로 나아오는 초대입니다.
사랑의 주님, 오늘 이 시간 부자 청년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게 하셨습니다.
주님보다 더 소중히 여기며 붙들고 있던 것들이 우리 안에 있음을 고백합니다. 오랫동안 익숙해져서 그것이 문제인 줄도 몰랐습니다. 주님, 용서해 주시옵소서.
오늘 이 예배 자리에서 그 첫 자리를 주님께 돌려드리기 원합니다. 우리 힘으로는 내어드릴 수 없지만,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다고 하셨으니, 주님의 은혜로 우리 마음의 가장 깊은 자리에 주님이 좌정하여 주시옵소서.
이 한 주간, 오늘 들은 말씀을 붙들고 살아가게 하시고, 주님과 동행하는 복된 날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