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바른믿음교회 성도 여러분, 한 주간의 절반을 지나 수요일 저녁, 이렇게 하나님 앞에 나와 예배드릴 수 있어 감사합니다.
월요일과 화요일을 지나오면서 직장에서, 가정에서 얼마나 많은 일들이 있으셨을지요. 몸도 마음도 지치셨을 텐데, 오늘 저녁 그 무거운 짐들을 잠시 내려놓고 이 자리에 나와 주신 모든 분들을 주님의 이름으로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나눌 말씀은 베드로전서 5장입니다. 경제는 흔들리고, 가정은 위기를 맞고, 몸과 마음은 지쳐 갑니다.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내 손에 잡히는 것이 없는 것 같고, 열심히 기도해도 하늘이 닫힌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습니다. 베드로는 바로 그런 상황 속에 있는 사람들에게 이 편지를 썼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 이 말은 단순히 자신을 낮추라는 도덕적 권면이 아닙니다. 이것은 신학적 선언입니다. 하나님의 능하신 손, 그 손 아래에 내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겸손입니다. 내 삶의 주도권이 내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겁니다.
우리가 교만해지는 순간은 대부분 언제입니까. 상황이 내 통제 안에 있다고 느낄 때입니다. 내가 계획하고, 내가 실행하고, 내가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생각할 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교만을 가만히 두지 않으십니다.
욥은 당대에 동방에서 가장 큰 부자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하루 만에 모든 것이 사라집니다. 재산이 사라지고, 종들이 죽고, 열 명의 자녀가 모두 한꺼번에 세상을 떠납니다. 이 소식이 모두 한날 한시에 욥에게 전해집니다.
그 순간 욥이 한 일이 무엇입니까. 욥기 1장 20절과 21절입니다. "욥이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려 예배하며 이르되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모든 것을 잃은 그 날 밤, 욥이 한 일은 예배였습니다. 주신 이도 여호와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이심을 인정하는 것, 그것이 겸손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 겸손이 욥을 무너지지 않게 했습니다.
베드로가 이 편지를 쓰는 배경에는 십자가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그것은 완전한 패배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바로 가장 깊은 겸손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낮아지심 이후에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지극히 높이셨습니다. 겸손의 끝은 부활입니다. 낮아짐의 끝은 높임입니다.
내 삶에 찾아오는 낮아짐의 순간들을 십자가의 빛 아래서 바라보는 것, 그 순간이 끝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일하고 계시는 과정임을 믿는 것,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겸손입니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베드로가 이 구절에서 진짜 강조하고 싶었던 것은 마귀의 두려움이 아니었습니다. 바로 우리의 태도였습니다. 근신하라 깨어라, 이 두 마디가 앞에 옵니다.
'근신하라'는 헬라어로 '소브리오스'인데, 취하지 말라, 정신을 차리라는 뜻입니다. 감정에 휩쓸리지 말고, 상황에 압도당하지 말고, 정신을 붙들라는 겁니다. '깨어라'는 '그레고레오'인데, 잠들지 말라, 파수꾼이 밤새 성벽을 지키듯 우리도 우리의 영혼 앞에서 파수꾼이 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왜 겸손의 명령 바로 다음에 이 명령이 나오는 걸까요. 교만한 사람은 이미 마귀에게 문을 열어 준 사람입니다. 내 힘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사람, 기도하지 않아도 된다고 여기는 사람, 그 사람은 이미 영적으로 잠든 겁니다. 겸손과 깨어 있음은 같은 뿌리에서 자란 두 가지 열매입니다.
어떤 분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사정이 생겨 한동안 교회를 쉬게 되었는데, 처음에는 영상으로 예배를 드렸고, 시간이 지날수록 그것도 흐지부지되더라는 겁니다. 어느 날 새벽에 눈이 떠졌는데, 자신이 하나님에 대해 이제 거의 아무 생각도 없는 사람이 되어 있다는 걸 깨달았다고 합니다.
무너진 게 아니었습니다. 조용히 잠든 겁니다. 그게 오히려 더 무섭습니다. 마귀는 때로는 폭풍처럼 찾아오지 않습니다. 조용히 우리를 재웁니다. 우리가 알아채지 못하는 사이에 신앙이 식어갑니다.
깨어 있다는 것은 거창한 게 아닙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살아있게 유지하는 겁니다. 매일 아침 짧게라도 말씀 앞에 앉는 것,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이렇게 함께 모이는 것, 내 기도가 식어갈 때 형제자매에게 기도를 부탁하는 것. 이것이 깨어 있는 삶입니다. 특별한 무언가가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 날마다 눈을 뜨는 겁니다.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시 고난을 당한 너희를 친히 온전하게 하시며 굳건하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하게 하시리라"
이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가장 깊은 위로가 무엇입니까. 고난이 잠시라는 겁니다. 영원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 고난 가운데 우리를 혼자 두시지 않는다는 겁니다. 친히 온전하게 하시고, 굳건하게 하시고, 강하게 하십니다. 우리가 깨어 있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일하십니다.
오늘 말씀을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겸손한 자는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고, 깨어 있는 자는 그 기다림을 믿음으로 견딥니다.
오늘 저녁 돌아가시면서 한 가지 결단을 품고 가시기 바랍니다. 내 삶의 어떤 영역에서 내가 잠들어 있는지 하나님 앞에 솔직히 내려놓는 겁니다. 말씀 앞에서 멀어진 것일 수도 있고, 기도가 형식이 되어 버린 것일 수도 있고, 어떤 관계 안에서 교만이 자리 잡은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 자리를 하나님께 드리십시오. 그리고 다시 깨어나십시오.
예수님은 가장 낮은 자리까지 내려가셨고, 부활로 가장 높은 자리에 오르셨습니다. 그 예수님이 오늘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우리가 연약할 때도, 잠들 때도, 그분은 우리를 놓지 않으십니다. 그 은혜 안에서 우리는 오늘도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 저녁 이 시간을 허락하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가 얼마나 쉽게 교만해지는지, 얼마나 쉽게 잠드는지 오늘 말씀 앞에서 돌아보게 하셨습니다.
주님 앞에 내드리지 못하고 붙들고 있던 것들을 오늘 내려놓게 하여 주시고, 다시 한번 겸손함으로 주님 앞에 나아가게 해 주십시오.
매일 깨어 기도하며 말씀을 붙드는 삶을 살아가도록 우리를 붙들어 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