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바른믿음교회 성도 여러분, 주님께서 지으신 새 주일 아침, 이렇게 함께 모여 예배드릴 수 있음을 감사합니다.
혹시 이런 경험이 있으신가요. 기도하고 또 기도했는데,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 것 같아서 무릎이 꺾이던 순간이요. 새벽마다 눈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갔는데, 돌아오는 길에는 여전히 그 문제가 그대로인 것 같아서, 내 기도가 닿기는 하는 걸까 싶었던 그 날들이요.
직장에서, 가정에서, 건강 문제에서, 자녀 문제에서 우리는 씨를 뿌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수확은 보이지 않고, 밭은 여전히 메말라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바로 그 자리에 있는 여러분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시편 126편이 기록된 때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오던 시기입니다. 70년간의 포로 생활, 두 세대가 넘는 세월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방 땅에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시편 137편은 그 심정을 이렇게 기록합니다.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에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려보내실 때에 우리는 꿈꾸는 것 같았도다 그 때에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 혀에는 찬양이 찼었도다 그 때에 뭇 나라 가운데에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큰 일을 행하셨다 하였도다"
꿈꾸는 것 같았도다. 70년을 기다렸던 회복이 실제로 눈앞에 펼쳐졌을 때, 그들은 현실인지 꿈인지 분간할 수 없었습니다. 너무나 오래 기다렸기 때문에, 막상 그것이 이루어졌을 때 믿기지 않았던 겁니다.
그런데 이 회복을 본 것은 이스라엘 백성만이 아니었습니다. 뭇 나라, 이방 민족들도 보았습니다. 그들이 말했습니다.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큰 일을 행하셨다. 하나님의 역사는 하나님의 백성 안에서만 머물지 않습니다. 그것은 세상을 향한 증거가 됩니다.
이 포로 귀환은 훨씬 더 크고 깊은 구원을 가리키는 그림자였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이 바로 그 궁극적인 포로됨의 해방이었습니다. 인류는 죄라는 포로됨 안에 갇혀 있었습니다. 아담 이후로 수천 년의 시간 동안 인간은 죄와 사망의 굴레 아래 신음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아들을 보내셔서,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을 통해 우리를 그 포로됨에서 건져내셨습니다. 우리의 회복은 고레스 왕의 칙령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선언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아프리카 내륙의 한 작은 마을에서 십 년 넘게 복음을 전했지만, 단 한 명의 회심자도 나오지 않았던 선교사님이 계셨습니다. 본국 선교 단체에서는 철수를 권고했습니다. 그 선교사님은 마지막으로 한 번 더 그 마을의 집집마다 돌며 눈물로 기도하고 마을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그로부터 3년 후, 그 마을에서 자생적인 신앙 공동체가 생겨났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그 선교사님이 눈물로 뿌린 씨앗이 땅속에서 싹을 틔운 겁니다. 선교사님은 그 추수를 자신의 눈으로 직접 보지 못했지만, 씨는 반드시 열매를 맺었습니다.
씨가 땅속에 묻혀 보이지 않는 그 시간이, 사실은 하나님께서 가장 깊이 역사하고 계신 시간입니다.
시편 기자는 4절에서 이렇게 기도합니다. 여호와여 우리의 포로를 남방 시내들 같이 돌려보내소서. 이미 포로에서 돌아온 백성들이, 다시 포로의 회복을 구하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는 지금 '이미'와 '아직' 사이에 살고 있습니다. 이미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을 받았지만, 이 땅에서는 여전히 눈물을 흘리고, 실망하고, 회복을 기다리는 삶을 살아갑니다. 시편 기자가 다시 회복을 구한 것은, 믿음이 없어서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것은 하나님을 알기에, 그분의 약속을 믿기에, 끝까지 기도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결단의 표현이었습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이 말씀은 단순한 위로가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씨를 뿌리는 자는 반드시 거둔다는 겁니다. 눈물이 씨앗을 무효로 만들지 않습니다. 오히려 눈물은 씨앗을 더 깊이 땅에 심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말씀을 몸소 살아내셨습니다.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우셨고, 예루살렘을 바라보며 우셨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피 같은 땀을 흘리시며 기도하셨습니다. 십자가 위에서 그 거룩한 생명의 씨앗이 땅에 떨어져 죽었을 때, 모든 사람의 눈에는 그것이 끝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사흘 후, 하나님께서는 그 씨앗을 부활의 생명으로 터뜨리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바로 그 증거입니다.
한 어머니가 십 년이 넘는 세월 동안 매일 새벽마다 눈물로 아들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아들은 신앙을 등지고 세상 속으로 깊이 빠져들었습니다. 기도해도 변하지 않는 아들을 보며, 그 어머니는 얼마나 많은 밤을 울었을까요. 그러나 어머니는 씨를 뿌리는 손을 내려놓지 않았습니다.
그로부터 15년이 지나, 그 아들은 신학대학원에 진학하여 목사가 되었습니다. 어머니의 눈물이 뿌린 씨앗이, 15년이라는 시간을 통과하여 풍성한 열매가 된 겁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오늘 이 자리에 가족의 구원을 위해 오랫동안 기도해 오신 분이 계십니까. 자녀의 회복을 위해 눈물을 흘리고 계신 분이 계십니까. 끊어진 관계, 나아지지 않는 건강, 막혀 있는 길 앞에서 하나님께 부르짖어 오신 분이 계십니까. 그 눈물은 헛되지 않습니다. 그 기도는 하나님 앞에 이미 상달되었습니다.
또한 씨를 뿌린다는 것은 기도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직장에서의 정직한 삶이 씨앗입니다. 가정에서 묵묵히 사랑으로 섬기는 것이 씨앗입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곳에서 조용히 선을 행하는 것이 씨앗입니다.
오늘 예배를 마치며 한 가지 결단을 드리시기를 권합니다. 지금까지 포기하려 했던 그 기도 제목, 그 씨앗을 다시 손에 쥐십시오. 눈물이 있어도 괜찮습니다. 아직 응답이 보이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씨를 뿌리는 손을 놓지 마십시오.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은 십자가의 죽음을 부활의 생명으로 뒤집으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 이 말씀 앞에 서서 우리의 연약함을 고백합니다.
때로는 지쳐서 씨 뿌리기를 멈추고 싶었습니다. 눈물이 너무 오래 이어져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었습니다.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눈물로 뿌린 씨앗을 결코 잊지 않으신다는 약속을 붙들고 다시 일어서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래 기도해 온 제목에 응답하여 주시옵소서. 이 땅에 하나님 나라의 추수가 풍성히 임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